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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BATON PASS

성화의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다음 주자에게 이어질 뿐.
여느 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출근길이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반수면 상태를 유지하던 그때, 전방의 광경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 중 반 이상이 니트 소재의 삭스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던 것. 사실 삭스 스니커즈의 첫 주자 격인 발렌시아가 스피드 러너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일상에서 쉽게 소화하기 힘든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시선을 상당히 의식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정하는 한국 사람들의 성향에 과연 통할까 싶었다. 이러한 에디터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출시 후 인기가 치솟은 까닭에 예약을 해도 상당 시간을 기다려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러자 다른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물론 스포츠웨어부터 SPA 브랜드까지 앞다투어 삭스 스니커즈 대열에 합류했다. 인기를 증명하는 척도인 정체 모를 아류작까지 대거 등장했다. 그야말로 반박 불가한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동안 애써 부정하던 현실을 출근길 9호선 4번 칸에서 맞닥뜨리자 어딘지 민망했다. 귓속을 파고드는 이어폰의 음악까지 더 크게 들리는 듯했다. 여기에 에디터가 신고 있던 앞코가 막힌 샌들까지 더해지니 지하철 4번 칸은 그야말로 슈즈 트렌드를 한눈에 보여주는 팝업 스토어 같았다. 내리면서 문득 생각했다. 이 뜨거운 인기를 이어받을 다음 주자는 무엇일까? 그래서 에디터가 2017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직접 고르고 고른 새로운 유망주를 소개한다. 물론 이번에는 완벽한 적중을 자신한다. 2017년 가을/겨울 컬렉션은 시즌 특성을 살린 한층 차분해진 컬러와 무거운 소재들이 주를 이루는데, 그중에서도 크고 단단해진 ‘오버 솔(Over Sole)’ 스니커즈들이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다. 높아진 굽은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길어지는 코트의 기장을 더욱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이전과 다른 다양한 아웃솔 디테일도 주목할 만하다. 아웃솔 자체에 패턴이나 컬러를 입히고 스터드를 박은 듯한 형태는 비교적 단조로운 가을/겨울 시즌의 팬츠 아래쪽에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그 밖에도 여러 컬러를 조합하거나 패턴을 다양하게 쪼개고 벨크로 디테일을 더하는 등 다양하게 시도한 믹스 디자인의 오버 솔 스니커즈는 포인트 아이템으로 제격이다. 언뜻 못생겨 보이기까지 하는 이 큼지막한 스니커즈는 지난 시즌에 비해 실루엣이 더욱 커진 룩과도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디자인이 다채로워진 만큼 포인트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룩 전체의 균형까지 맞춰주는 것이다.
트렌드를 만드는 것은 디자이너와 패션 업계 종사자의 역할이지만 그 트렌드를 스탠더드로 만드는 것은 유명 브랜드의 네임 태그나 마케팅이 아닌 대중의 판단과 선택이다. 정치인을 뽑는 것부터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일까지 많은 것이 국민의 손에 달린 요즘, 선택에 대한 책임감과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이러한 순간에 새 시즌을 위한 슈즈 선택이라니, 중대한 임무가 아닐 수 없다. 항공모함 부럽지 않은 늠름함으로 나의 스타일에 힘이 되어줄 단단하고 개성 넘치는 오버 솔 스니커즈. 그에게 한 표 던지며 당당히 외쳐본다. “내 맘을 훔친 신발, 너야 너!”

Editor HONG JUN SEOK Photographed EDITION JALOU, VALENTINO, NIKE, ADIDAS

201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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