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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SOMETHING NEW SOMETHING DIFFERENT

제대로 새롭고 특별한 실루엣의 출현.
모두 BALENCIAGA

박스를 쓴 사내들이 런웨이를 걷는다. 박스 속 어깨는 움츠러들었을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한없이 당당하고 반듯한 모습. 그 어깨를 보자니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마음은 둥글 것 같다. 태평양처럼 넓은 어깨는 뭇 여성의 시선과 마음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해 보인다. 간밤 꿈속에 나타난 남자의 이야기도, 어릴 적 상상을 가득 담은 스케치북의 그림 이야기도 아니다. 2017년 봄/여름 패션 위크에서 관객의 환호성을 불러일으킨 몇몇 브랜드의 런웨이 장면이며 지금 쇼윈도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이를 ‘박스 실루엣’이라고 부른다.

의복을 전공했거나 패션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실루엣’은 친숙한 패션 용어다. 몸의 외형 선을 뜻하는 이 말은 인류가 옷을 걸치기 시작한 먼 옛날부터 복식사에서 주요한 소재였다. 패션 자체가 그러하듯 실루엣은 한 시대의 사회와 경제상을 반영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밀리터리 룩이 유행하다가 종전 후 여성 신체의 곡선미를 다시 살리고 부르주아 취향을 접목한 엑스(X) 실루엣이 유행했으며 1960년대에는 팝아트, 미니멀리즘 같은 미술 사조의 영향으로 에이치(H) 실루엣이 생겨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렇듯 실루엣은 다양한 모습을 보이지만 남녀 모두에게 유행한 경우는 드물다. 앞서 말한 두 실루엣만 해도 그렇다. 엑스 실루엣은 잘록한 허리 라인의 재킷과 풍성한 하체를 강조하는 플레어스커트로 구성된 크리스찬 디올의 ‘뉴 룩’에서 시작됐다. 에이치 실루엣 또한 당시 인기를 끌던 여성 미니 원피스의 모습을 딴 것이다. 그런데 남성복은 딱히 실루엣이랄 것 없이 그때그때 어울리는 옷끼리 매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17년 들어 이야기가 달라졌다. 남성복에도 실루엣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왼쪽부터) LANVIN, NEIL BARRETT, DOLCE&GABBANA

박스 실루엣의 시작
남성복의 실루엣을 이끈 주인공은 발렌시아가의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 즈바살리아다. 근래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은 패션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뎀나 즈바살리아는 디자이너 인생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유스 컬처 돌풍을 일으킨 베트멍의 일곱 디자이너 중 한 명인 그는 베트멍을 만든 지 3년 만에 역사 깊은 럭셔리 브랜드 발렌시아가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됐다. 발렌시아가에서 첫 여성 컬렉션을 선보인 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브랜드 역사상 첫 남성 컬렉션까지 완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의 남성 컬렉션은 브랜드의 근본인 테일러링에 집중한다. 그는 과장되게 확장되거나 수축된 형태의 실루엣을 대조시켜 재단의 중요성, 의상과 신체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구조적인 재단과 완벽한 실루엣을 추구하던 창업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정신을 잇는 동시에 새로운 실루엣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가 탄생시킨 새로운 실루엣이 바로 박스 실루엣이다. 이전까지 흔히 눈에 띄었던, 어깨와 소매 등 옷 전체가 큰 오버사이즈 실루엣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어깨는 옷 속의 큰 패드가 느껴질 만큼 넓고 각이 졌지만 소매는 길지 않다. 테일러링은 일반적인 형태의 수트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는 고정 관념을 깨는 적확한 예다. 재해석된 밀리터리 룩과 박스 실루엣의 수트를 선보인 준지의 이번 시즌 컬렉션 또한 클래식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한다.

(왼쪽부터) MOTO GUO, NEIL BARRETT, JUUN. J

어쨌거나, 이처럼 핫하다는 패션은 역시 다른 세상 얘기 같은가? 시도는 어렵지 않다. 오버사이즈 룩을 즐겨봤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평소 입던 사이즈보다 두세 단계높여 입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사이즈가 큰 옷을 찾기 위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지갑이 좀 가벼워도 괜찮다. 가까운 아웃렛이나 빈티지 숍만 가도 사이즈가 크고 두툼하게 누빈 패드의 재킷을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스타일링도 쉽다. 박스 실루엣은 넓고 각진 어깨가 특징이니만큼 상의만 크게 입으면 된다. 하의는 어떤 것을 입어도 무방하다. 슬림한 스트레이트 팬츠나 쇼츠는 물론 와이드 팬츠와도 잘 어울린다. 돌체 앤 가바나처럼 밑단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테이퍼드 피트 팬츠를 입어도 좋다. 옷장 속의 바지를 꺼내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다 보면 당신의 박스 실루엣 도전은 성공적으로 끝날 것이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실루엣이 없어진 지금은 실루엣보다 특정 브랜드의 스타일이 각광받는다. 그럼에도 박스 실루엣의 출현이 유독 새로워 보이고 돋보이는 이유는 전에 보지 못했다는 점, 한 번 마음이 쏠리기 시작하면 어렵지 않게 시도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어깨가 절로 처지는 뉴스가 잦은 이 봄, 박스 실루엣 속에 그 어깨를 숨겨보는 건 어떨까.

Editor KIM YE JIN Photographed EDITION JALOU

2017년 4월호

<저작권자 © 로피시엘 옴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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